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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세자들_사도세자, 소현세자, 효명세자

조선시대에 세자는 다음 왕위 계승자를 말하는 것이다. 많은 왕자들 중에 공식적으로 다음 왕위를 계승할 왕자로 인정받는 것인데 이러한 세자들 중에는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세자들이 많다.

 

조선왕조에서 세자라는 것은 다음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확정적이기에 왕 다음으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왕이 되기까지는 갈길이 멀다.

 

세자의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면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한다. 세자 시절에 죽음을 당했거나 죽은 세자 중에 가장 많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거나 드라마나 영화로 소개된 비운의 세자 3명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한다.

 

사도세자

조선 최초로 세자라는 타이틀에서 물러난 사람은 아마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일 것이다. 이런저런 많은 기행으로 인해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에 의해 세자에서 물러났지만 이후의 삶은 누릴 것 다 누린 편이다.

 

하지만 사도세자와 효명세자의 경우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경우 아버지 영조에 의해서 뒤주에 갇혀 굶어 죽었다.

 

임오화변이라고 말하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가히 충격적이고 그 죽음을 지켜본 아들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두고두고 한이 맺혀서 나중에 왕이 된 이후 아버지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하고 수원 화성 융건능에 모셨다.

 

사도세자는 어려서 아주 영특하고 똑똑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워 아버지 영조 또한 많은 사랑을 했으나 아버지 영조에 의해서 점점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15살 되던 해에 자신을 대신해서 대리청정을 하게 하였다. 정치적 경험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영조와 다시 돌아오기 힘든 갈등의 시작 있다.

 

영조는 당시 집권세력이자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노론을 지지했지만 사도세자는 소론에 가까운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어 노론의 공격의 대상이었다.

 

영조는 대리청정 이외에 왕위를 물려준다는 양위도 여러 번 하면서 극도로 아들을 긴장시켜 사도세자가 정신적 착란 증상을 보이게 되었다.

 

결국 서로의 불신과 정신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버지 영조에 의해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는 사도세자는 아들에 의해 사후 왕위 되었다.

 

조선시대에서 폐위된 세자 중에서 후손이 가장 많이 왕이 된 케이스가 사도세자이다. 아들이 정조, 손자가 순조 그리고 귀빈의 자식들의 손자가 철종, 다른 자손이 고종이 되었다.

 

사도세자 이후 조선의 모든 왕은 사도세자 후손들이었다. 귀빈의 자식인 은언군, 은신 군의 손자가 철종과 흥선대원군이다. 그래서 고종 때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나서 사도세자는 황제로 추존되었다.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본인과 자식들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가장 비참함 세자이다. 사도세자는 자식이라도 왕이 되었지만 소현세자는 부인 강 씨는 사약을 받아 죽었고 아버지 인조에 의해서 3명의 아들도 죽었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에 볼모로 붙잡혀갔다가 청나라에서 서양의 많은 문물을 접하고 특히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등 조선을 근대화로 이끌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인조는 그러한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청나라를 함께하는 나라가 아닌 언젠가는 원수를 갚아야 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신하들과도 마찰이 있었다.

 

조선시대 몇 번의 반정은 있었으나 그중에 가장 명분이 약하고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하는 반정이 인조반정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병자호란으로 전국을 전쟁터로 만들고 백성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인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를 아들인 소현세자에게 돌리고 또한 신하들의 반발을 아들에게 전하해서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독살을 당하게 된 것이다.

 

아들을 죽인후에 며느리와 손자까지 모두 죽이는 잔인한 면모를 보였는데 사실 손자들은 나중에 왕권에 도전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죽인 것 같다.

 

소현세자의 아들중에 유일하게 막내아들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후손은 이인좌에 난에 연루되어 역모로 죽었다. 밀풍군 탄이 소현세자 후손이다.

 

소현세자의 동생 봉림대군이 인조의 뒤를 이어서 효종으로 등극하였으나 북벌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소현 제자는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었으나 효종은 그러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효명세자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로 당시 만연해 있던 세도정치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백성을 위해 개혁을 시도하는 대리청정을 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정조의 아들 순조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고 수렴청정과 세도정치에 의해서 정치적인 능력도 뜻도 없었다. 하지만 아들인 효명세자는 달랐다.

 

순조도 그런 아들을 높이 사서 자신을 대리해서 정치를 할 수 있게 대리청정을 시켰으나 당시 집권세력인 안동 김 씨의 견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3년 만에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었다.

 

당시 22살의 나이로 갑자기 죽어서 많은 사람들이 독살설을 주장했으나 정확한 사인은 밝히지 못했다. 조선의 마지막 희망은 그렇게 사라졌다.

 

효명세자가 만일 살아서 순조 뒤를 이어 조선의 왕이 되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효명세자 아들 헌종이 순조의 뒤를 이었고 이후 조선의 왕들은 허수아비와 같았다.

 

양녕대군은 조선시대 최초로 왕이 되지 못한 세자이다. 아버지 태종은 조선을 건국하는데 일등 공신이었지만 정도전과는 정치 철학을 달리 했다.

 

태종은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켜 즉위했다.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던 태종은 자신의 아들또한 힘이 있는 왕이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양녕대군 주변에는 외척 세력이 많았다.

 

그리고 양녕대군은 아버지 태종의 기대와 달리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었고 학문 보다는 사냥을 좋아 했다. 적장자 승계를 꿈꾸었던 태종은 양녕을 세자로 책봉했지만 두사람은 끝임없이 갈등했다.

 

결국 태종은 양녕을 폐위했다. 폐위된 양녕은 위에 다른 세자들과 달리 천수를 누렸다.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양녕은 그러하지 않았다.

 

양녕대군의 동생 세종대왕은 형을 극진히 보살폈고 세종이 죽고 세종의 자식들간의 권력암투를 양녕대군은 지켜 보았다. 심지어 수양대군이 조카를 몰아 내는 계유정난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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