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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가계도_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
조선 16대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대치하다가 삼전도의 치욕을 경험한 임금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의해서 왕이 되지만 결국 자식도 믿지 못해 자식을 죽이는 비정한 아버지로, 전쟁을 막지 못해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무능한 왕으로 기억된다.
인조는 족보상으로 광해군의 조카이다. 선조의 후궁 인빈 김 씨 소생 청원군(원종 추존)의 아들이다. 광해군을 몰아내는 반정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되 되었으나 반정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인조는 광해군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다. 동생 능창군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서 죽었고 아버지 또한 그로 인해서 죽었기 때문에 광해군을 증오했다.
인조반정을 결과적으로 보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반정이다. 반정의 명분도 약했고 단지 유희분, 이이첨, 정인홍 등 대북파가 장악한 권력을 빼앗으려는 단순한 권력투쟁이었다.
인조반정 이후 반정세력 간 갈등이 생겼고 그 와중에 이괄의 난이 생겼다. 일괄은 반정의 중심세력이었지만 논공행상의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괄의 난은 단순한 난이 아니고 북방을 지키는 병력의 공백을 가져와 결국 병자호란이 발생하게 하는 원인과 전쟁에서 힘 한번 못쓰고 패한 결과를 가져왔다.
인조 가계도
- 정비 2명에게서 4남, 후궁 3명에게서 2남 1녀를 두었다.
- 인렬 왕후 한 씨 : 소현세자, 봉림대군(17대 왕 효종), 인평대군, 용성 대군
- 귀인 조 씨(폐출되어 사약을 받음) : 숭선군, 악선군, 효명 옹주
- 귀인 장 씨 : 자식 없음
- 숙의 난 씨 : 자식 없음
소현세자는 비운의 세자였다. 아버지 인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부인과 어린 아들 두 명도 같은 운명을 맞이 했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소현세자는 세자빈 강 씨와 함께 인질로 청나라에 갔다.
소현세자는 비록 인질의 신분이지만 서양문물을 접하고 청나라 관료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부국강병의 조선을 만들려고 했다. 특히 서양의 천문과 수학 천주교 서적 등에 관심이 많아서 이들 서적을 조선으로 가져왔다.
청나라에서 볼모로 있는 동안 소현세자는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동시에 청나라 요구사항을 조선에게 전달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몹시 힘들어했다고 한다.
세자빈 강 씨는 청나라와 무역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인다.강 씨는 벌어들인 돈으로 당시 청나라에 인질로 와있는 조선사람들을 풀어 주는 데 사용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소현세자와 세자빈을 은인으로 생각했다.
청나라 인질 생활을 끝내고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를 인조는 아들이 아닌 정적으로 생각했다. 급기야 소현세자에게 냉정한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 왔을 때 신하들이 맞이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세자는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죽었다. 아버지 인조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소현세자가 죽자 장례도 정식으로 치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왕위를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동생 봉림대군으로 잇게 했다. 당시 많은 신하들이 반대를 했다고 한다.
인조는 죽자 세자비 강씨를 유배 보내서 죽게 하고 어린 손자들도 모두 죽게 했다. 소현세자와 세자비 그리고 아들들이 죽고 막내아들만 겨우 살아남았다고 한다.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의 질투와 무능에 의해서 자신의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가족 모두가 몰살당한 비운의 왕세자였다.
봉림대군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소현세자가 죽자 세자로 책봉되고 17대 왕 효종이 된다. 봉림대군은 형 소현세자와 같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지만 형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봉림대군은 형과 달리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있으면서 치욕을 갚고 청나라를 정벌할 것에 몰두했다고 한다. 이러한 봉림대군의 행동은 인조에게도 알려져 인조가 소현세자의 아들 대신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효종은 왕이 되고 나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북벌에 힘쓴다. 하지만 북벌은 당시 조선의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효종은 즉위 과정의 정당성 결여와 전후 복구 그리고 북벌에 대한 열망 등으로 신하들과 갈등이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송시열이었다.
효종 또한 귀 밑에 생긴 종기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다. 어의가 침을 잘못 놓아서 죽었다는 설과 송시열을 포함한 세력들이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
인조 가계도,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을 보면서 인조는 왕이 되지 않았으면 조선은 또 다른 전쟁으로 백성들이 고충을 격지 않았을 것이고 인조 가족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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