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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_철의 군주
조선 4대 명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태종 이방원은 왕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었고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임금이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조선을 건국하는데 일등공신인 동시에 건국 초기 불안한 조선을 안정시켜 500년간 조선이 이어지게 한 임금이기도 하다.
이방원은 서열상으로 왕이 될 수는 없었다.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 씨의 다섯 번째 아들이어서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없었으나 두 번의 왕자의 난으로 조선 3대 임금이 되었다.
조선 건국에 태종 이방원은 일등공신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과 함께 조선을 건국했지만 정모 주와 정도전 두 사람은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방원은 정도전의 건국 철학과는 완전히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도전에게 왕이란 선비 중에 한 명이고 조선은 선비의 나라라고 생각했고 이방원은 조선은 왕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이방원으로 하여금 난을 일으켜 왕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고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은 물론이고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도 멀어지게 된 것이다.
두 번의 왕자의 난을 통해서 절대 왕권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모두 제거하였다. 1차 왕자의 난을 통해서는 당시 세자로 책봉되어 있던 의안대군 방석을 포함해서 신덕왕후 강 씨 소생의 왕자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태조의 둘째 아들 방과가 2대 국왕 정종이 되었고 정도전과 안은 심효생 등 개국 공신들 대부분이 숙청되었다.
2차 왕자의 난은 1차 왕자의 난을 같이 일으킨 이방원의 형 희한 대군 방간이 난을 일으키고 이것을 정리하고 정종의 양위를 받아 본인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태종"이라는 것은 묘호이다. 묘호라는 것은 왕이 죽은 다음 붙이는 이름인데 "太(클 태)"는 두 명에게만 붙인다. 하나는 나라를 건국한 왕에게 "태조"라고 붙이고 두 번째에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왕에게 "태종"이라고 보통 묘호를 붙인다.
태종은 보통 2번째 임금에게 붙이는데 태종의 아들 세종대왕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태종의 묘호를 붙이고 큰아버지인 정종은 묘호를 짓지 않았다.
정종은 200년이 지난 숙종 때에 와서 묘호를 받은 왕이다. 그만큼 조선 왕실에서는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조카인 세종대와 조차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를 흘리고 왕이 된 태종은 왕권을 유지하고 다음 왕이 정치적인 부담감을 가지지 않도록 본인의 재위 기간에도 많은 피를 보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신과 함께 혁명을 함께한 개국공신들을 제거했다. 자신의 처남들은 1차와 2차 왕자의 난에서 목숨을 걸고 태종을 지킨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양녕대군을 지지하자 모두 유배를 보내고 사형에 처했다. 그리고 태종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숙번도 유배를 보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서 다음 왕인 세종대 왕대에는 왕권이 안정되게 된 것이다. 군사제도를 강화했고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생긴 노비 문제도 해결했다.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후궁을 많이 두었다. 이때문에 혁명 동지인 왕비와 갈등하게 되었다. 외척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려는 태종의 노력은 가족에게는 불행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왕권강화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세종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본인은 상왕으로 남아 있었다.
재위 기간은 모두 17년 10개월이었는데 잔인한 왕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과 그리고 안정된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태종의 이러한 노력은 세종이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왕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그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피의 숙청을 그대로 계승했는데 그가 바로 세조이다.
세조는 할아버지와 같이 왕권을 신봉했다. 그래서 신하들이 집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김종서를 비롯한 고명대신을 죽였다.
세조의 계유정난은 태종의 왕자의 난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킬 때 적극적으로 지지한 왕실어른이 태종의 큰아들 양녕대군이다. 태종 시절 폐세자 되었지만 동생 세종의 자식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태종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나라를 걱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태종이 죽기 전에 전국적으로 가뭄이 극심했는데 태종은 비가 내려달라고 하늘에 빌었다고 한다.
태종이 죽기 직전까지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했고 죽으면서 내가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태종이 죽은 날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한다.
태종 이방원이 정몽주와 주고받은 하여가가 유명해서 지금까지 정몽주의 단심가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힌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살자라는 것이 하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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