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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반란_이괄의 난, 이인좌의 난

조선시대 대표적 반란 중 북쪽 지역에서 일어난 이괄의 난과 남쪽 지역에서 일어나 이인좌의 난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이괄의 난은 인조 때 발생하였고 이인좌의 난은 영조 때 발생한 난이다.

 

조선시대 실패한 대표적 반란

왕조시대 반란은 역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족이 일으킨 반란부터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 동학까지 조선시대에는 크고 작은 반란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실패한 대표적 반란은 다음과 같다.

  1. 이괄의 난
  2. 이인좌의 난
  3. 이시애의 난
  4. 홍경래의 난
  5. 이징옥의 난
  6. 이몽학의 난 
  7. 정여립의 난

조선시대에는 성공한 반정은 있었지만 성공한 반란은 없었다. 위에 열거한 반란들은 대부분 무장이 주도한 반란이지만 이몽학의 난의 경우는 농민들이 일으킨 난이다.

 

정여립의 난의 경우 여러가지 정황 증거와 정여립의 행동으로 추측했을 때 난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여립은 자결을 했고 기축옥사로 이어지면서 정치적 사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조선시대 역모 사건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훈구파와 사림의 대립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모반사건이라는 증거는 이후 하나도 없었다.

 

이징옥의 난은 이시애의 난과 함께 조선초기 대표적인 반란이다. 이징옥이 스스로 황제라고 칭했는데 조선 시대 반란 중에 스스로를 황제라고 한 난은 이징옥의 난이 유일하다.

 

이괄의 난

광해군은 이괄을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임명을 했는데 임지로 출발하기 전에 인조반정에 가담해서 광해군을 폐위시키는데 공을 세운다.

 

하지만 농공행상에서 2등 공신으로 책록 되고 북쪽 지방인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는데 불만이 아주 컸다. 당시 후금의 세력이 커지고 언제든 조선을 침략할 수 있어 평안도와 함경도를 지키는 것 조선의 주요 병력이 집중되었다.

 

이괄은 조선 국경을 수비하는 핵심 병력 1만 2천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우발적으로 발생했는데 반정세력들이 이괄 아들이 역모에 가담했다고 국문을 하기 위해 체포하려고 해서 이괄이 이에 불응하고 병력을 동원했다.

 

반란군의 세력은 조선 최고의 정예병이어서 한양도성까지 파죽지세로 내려왔다. 조선시대에 발생한 반란 중에 도성인 한양을 점령한 유일한 반란이다.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공주로 피난을 갔다. 반란군은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길마재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나서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갔고 이괄은 부하에 의해서 살해되어 반란이 진압되었다.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1년 만에 발생한 사건이고 북쪽을 시키는 정예병력 대부분이 반란으로 인해서 죽거나 도망을 가게 되었다.

 

결국 후금 세력의 남하를 막아내지 못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인조가 치욕적으로 청나라에게 항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은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지 않고 기존 왕족 중에서 누군가를 왕으로 추대하는데 이괄의 난에서는 흥안군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흥안군은 선조의 아들로 광해군의 이복동생이다. 이괄의 난 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왕이 되었고 단지 7일간 왕으로 있다가 반란이 진압되고 사사되었다. 

 

이인좌의 난

이괄의 난이 북쪽 지방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반란이라면 이인좌의 난은 남쪽 지역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난이다. 영조시대에 발생한 난으로 반란의 주요 지역이 경상도여서 영남란이라고 한다.

 

이인좌와 정희량이 일으킨 난으로 경종이 의문스럽게 죽고 배후에 영조와 노론세력이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일으킨 반란이다.

 

조선시대 적통왕자가 아닌 방계 출신으로 왕이 된 사람이 선조와 영조이다. 즉위 과정의 정통성 문제로 선조시대에는 정여립의 난이 발생했고, 영조시대에는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다.

 

정여립의 난은 호남을 중심으로 발생해서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 일정기간 동안 호남에 대한 차별이 발생했는데 이인좌의 난 또한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 영남이 차별받았다.

 

이인좌는 난을 일으키면서 밀풍군을 왕으로 추대했다. 밀풍군은 소현세자의 후손인데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역모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불운한 왕족을 꼽으라면 소현세자이다. 아버지와 갈등으로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귀국하자마자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가족들 또한 불행했다.

 

세자비는 소현세자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역모로 사사되었고 소현세자 아들들은 모두 제주도로 귀향에 보내졌는데 첫째와 둘째는 귀향길에 죽었고 막내만 살아남았지만 후손은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왕족들 중에서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은 이처럼 언제 역모에 연루되어서 죽을 줄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았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 박문수이다.

 

우리가 암행어사 출두요 하면 생각나는 어사 박문수가 이인좌의 난과 관련된 인물이다. 반란세력이 아닌 진압 세력이다. 다른 기록은 반란 이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암행어사로 파견된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 실패한 반란 이괄의 난과 이인좌의 난은 반란이 진압된 이후 후폭풍이 큰 난이었다. 이괄의 난으로 병자호란이 발생해서 많은 백성들이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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